이중생활로 경험한 대안교육
이 글의 갈래 : 꾸밈없이 이 글의 태그 : 대안교육, 이중생활, 하자센터2000년 가을, 두발제한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중학교 1학년과 2학년에 담임을 맡아서 잘 알고 지내는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너네가 아무리 발버둥쳐 봤자 소용 없어. 학부모들이 교장실로 전화해대면 그 효과가 바로 나와. 그러니 학부모들을 움직여야 돼." 2002년 여름, 난 대학생이 되었고 '끝나지 않는 이슈'인 두발제한에 관한 방송 토론프로그램에 나가게 되었다. 학생, 교사, 학부모가 모두 모여 있는 자리였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들었던 선생님의 그 얘기를 전하니 다들 웃으면서 공감했다. 그랬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가장 힘이 센 집단은 학부모다.
1999년에 대통령자문 새교육 공동체 위원회가 주최한 '교육 현안 토론회'에서 교실붕괴에 관해 발제한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교실붕괴를 당연한 현상으로 봤고, 그 이후 새로운 학교의 방향으로 다음과 같은 표를 제시했다. (굵은 글씨는 싸움의 승자를 나타낸다.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조한혜정, 또하나의문화] 64쪽 참조.)
| 전제: 우선 공동의 적부터 무찌르자 |
|---|
| 1단계. 학생+학부모+교사 vs. 교육 당국 |
| 교사들 학부모들 표 모두 합하면 그게 얼만데? 정부에서 일치감치 두 손 두 발 다 든다. |
| 2단계. 학생+학부모 vs. 교사 |
| 학생은 제쳐두고라도... 학부모 혼자 교사와 맞붙어도 학부모가 이긴다. 머릿수로. |
| 3단계. 학생 vs. 학부모 |
| 자식 이기는 부모 없댄다. |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학생 중심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는 교육 당국을 신뢰하지 않았고,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학생은 학부모를 신뢰하지 않았다. 따라서 결국엔 학생이 승리할 것으로 보았지만 내 예상은 아직까지 맞지 않았다. '교실붕괴 현상'은 지속되고 있지만 기존의 교실이 붕괴되고 새로운 교실이 창조된다든지 하는 일이 공교육 안에서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학생들이 학부모들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 즈음에 하자센터가 생겼다. 나는 현재 하자작업장학교의 전신인 하자꼴레지오에 들어갔고, '온라인 문장사전 만들기'란 수업을 들었다. 꼴레지오 학생들을 우리는 '꼬라지'라고 불렀다. 꼬라지들 중에서 탈학교를 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 2명 뿐이었다. 1주일에 한 번, 방과 후에 하자센터로 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이었는데 하자센터는 전혀 그런 곳이 아니었다. 나는 남녀노소 서로 반말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자센터에서는 나이에 상관 없이 친해지면 말을 놓을 수 있었다. 물론 적응 안 되는 것도 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수업이 끝나면 나를 빼놓고 모두들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가방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집에 간 것은 아니었고. 알고보니 다 같이 담배를 피러 간 것이었다.
하자센터에서는 다들 내가 왜 고등학교를 그대로 다니고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지 못한 것은 부모님과의 보이지 않는 타협의 산물이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으면 학교는 학교대로 다니면서 하자센터에 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면서 하자센터도 다니는 게 가능했기 때문도 있다. 이른바 '이해찬 1세대'였기 때문에 야간자율학습도, 보충수업도 없었다. 그래서 학교도 다니면서 하자센터도 다니는 '이중생활'이 가능했다. ("'이해찬 1세대'는 산지식이 경쟁력" [펭도, 경향신문 2001년 12월 6일자 30면] 참조.)
하자센터에서 위 표의 2단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1단계와 3단계는 존재했고, 1단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나를 비롯해 많은 아이들이 산 지식을 체득했던 곳이지만 서울시의 상상력 빈곤으로 정식 명칭인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라는 이름에 하자센터의 역할을 가둬놓으려 하고 있다. 나와 같이 이중생활로 대안교육을 경험하려면 하자센터 같이 도심에 있는 공간이 필수적인데, 그 곳이 10년 전의 고루한 직업체험센터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학생들이 PC방을 가니 학교 안에 PC방을 만들고, 학생들이 학원에 가니 학교에 학원강사들을 데려오는 이 무조건적인 학교중심 교육정책이 하루빨리 바뀌어서 대안교육시설과 공교육시설이 공존하는, 모든 아이들의 이중생활이 가능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